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한영 암살 사건 (문단 편집) == 암살 이후 전개 == [[파일:5545678437455.jpg]] * '''피격직후''' 잠시 후 박씨는 비상계단을 통해 달아나는 범인들의 뒷모습을 본후 남씨집에 문을 두드려 바깥으로 나오도록 했다. 호출을 받은 경비원도 14층으로 올라오게 된다. 이씨는 머리에 피를 흘리며 등과 머리를 벽에 기댄채 앉은 자세로 신음중이었다. 남씨가 문앞에 쓰러진 이한영을 발견하고 일으켜 세우려는 순간 이마 부분이 퉁퉁 부은채 피를 흘리며 쓰러져 의식을 잃어가는 이한영이 대학선배 부인의 "왜이래??!! 정신차려!!! 누가 그랬어??!!" 라는 물음에 간첩 두명을 의미하는 중지와 검지를 필사적으로 펴들고 희미한 목소리로 대학선배 부인과 경비원에게 '''"간...첩 간...첩"''' 이라고 말한 뒤 어렵사리 손짓으로 옆에 있는 대학선배 부인 남씨에게 마치 "내가 지금 총에 맞았으니 이 상황을 알리기 위해 어딘가 연락을 해" 라는듯한 제스처를 취했고, 앞집 주민의 증언에 의하면 의식을 잃어가면서도 119, 129, 112 등의 단어를 말했다고 한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남씨는 이한영의 머리를 손으로 받치면서 휴지로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선혈을 계속 닦았고 이한영은 곧 그 자리에서 구조대가 도착하기 전 의식을 잃었다. 사실 모든 총이 그렇겠지만, 브라우닝 권총도 몸에 바싹 붙여 발포하기 보다는 가까운 거리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실탄의 회전력을 이용해서 쏘는것이 위력이 더 커진다. 이한영이 맞은 25구경 총알은 탄구 크기가 모나미 볼펜 앞부분의 6분의 1수준이지만 [[.22 Long Rifle|.22구경]]보다 더 약한 탄약이다. 총을 밀착당하여 맞았을 가능성이 굉장히크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중추가 완전히 마비되지 않아 총을 맞은 직후에도 어느 정도 말을 할 수 있었으며, 즉사하지 않았던 것이다. 총알이 머리에 들어가 두개골을 완전히 관통하지 못하고 뇌안에서 멈췄다. 이 말인즉슨, 탄두가 두개골로 들어갔다가 반대편으로 나가려다가 못 뚫고 안쪽으로 튕겨나와 2차 뇌손상을 일으켰다. 당시 이한영은 뭔가 말을 하려 했지만 두개골을 뚫은 실탄이 뇌 속으로 5cm가량 박혀버려 호흡이 가빠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고 한다. 이씨의 대학선배는 전날 친구들과 강원도 홍천 스키장에 갔다가 밤 10시가 막 넘어 돌아왔는데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이씨가 이미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고 주민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이씨의 주변에는 초콜릿과 꽃바구니가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발렌타인데이 선물로 이씨가 사온 것이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5555454555.jpg|width=100%]]}}}|| || 피격 당시 이씨의 옷차림. || * '''오후 10시 10분경''' 이한영은 주민들에 의해 119구급차로 경기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차병원 응급실로 옮겨져 곧바로 X선 촬영을 한 뒤 약 1시간 동안 응급치료를 받았다. 병원으로 옮겨진 이씨는 119구급대가 피격현장에 도착해 있었을 당시 이미 거친호흡과 함께, 동공이 풀린 동시에, 혼수상태에 빠져있었고, 총을 맞은 왼쪽 이마에서는 선혈이 계속 흘러내렸다. [[파일:7765879877.jpg]] * '''오후 11시 5분경''' 단층(CT)촬영 결과 총알이 뇌 중심부분 안쪽 5㎝ 깊이에 박혀있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 '''오후 11시 30분경''' 의료진은 수술에 들어갔으며, 수술실에 들어갈 당시 이씨는 응급실로 실려올 때와는 달리 강한 자극에도 꼼짝을 하지 않고 자기호흡마저 사라져 산소마스크에 의지, 겨우 숨을 유지했다. 수술이 진행되면서 혈압이 50~60까지 뚝 떨어져 혈압상승제를 맞기 시작했다. 총알이 회전하면서 이한영의 뇌를 휘저어 놓은 것을 확인, 총알을 제거하는 것마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손상된 부위에 대한 치료를 했다. 뇌손상이 우려되어 뇌막 속에 뭉친 피를 제거하는 수술 정도에 그쳐야 했다. * '''오전 0시 50분경 (1997년 2월 16일 일요일)''' 이씨는 수술을 마치고 3층 중환자실로 이송됐다. * '''오전 1시 7분경''' 병원 본관 3층 수술실에 다녀온 이씨의 부인 김모씨가 밖에서 기다리던 이씨의 장모에게 "목사님을 불러주세요" 고 말해 이씨의 상태가 매우 위독한 것으로 추정됐다. * '''오전 5시경''' 혈압이 상승하기 시작하고, 가슴에 전기충격을 가하면서 이한영은 손가락을 움직이는 등 반응을 보여 지켜보던 경찰과, 가족들이 "회생하는 것이 아니냐" 며 흥분하기도 했다. * '''오전 8시경''' 뇌기능이 완전히 사라져 뇌사상태에 들어갔고, 혈압상승제와 산소마스크가 없으면 그나마 생명조차 유지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이로써 의료진은 "2~3일을 넘기지 못할 것" 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평소 심장과 폐기능이 좋았던 이씨는 끈질긴 생명력으로 목숨을 유지, 지켜보는 이들에게 실낱같은 기대감을 안겨줬다. * '''피격 5일째 (1997년 2월 19일 수요일)''' 다가올 생일을 맞아 이씨의 딸 예인이가 도화지에 아빠 얼굴을 그렸다. 그리고 바깥 여백을 이용해 편지를 썼다. "빨리 일어나서 옛날처럼 놀아주세요, 아빠." 예인이가 아빠 머리맡에서 이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울먹이면서 "옛날처럼 놀아주세요." 라고 말하는 순간 목석처럼 누워있던 이씨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경련이 스치고 지나갔다. 한편, 어떤 기자는 세탁실에서 들고온 의사가운을 입고 의사를 가장해 이씨 병실로 들어가려다가 저지당하기도 했다. 청와대나 외국언론을 팔아 환자상태를 묻는 경우도 있었다. 기자들은 취재경쟁으로 법석이었고 정보가 새는 것을 막으려는 경찰도 필사적이었다. * '''피격 6일째 (1997년 2월 20일 목요일)''' 소화기능과 맥박, 체온이 정상치에 가까워 생존기간이 앞으로 3주이상 연장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왔다. 병원측이 20일부터 위장으로 연결된 튜브를 통해 미음을 투여한 것도 이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게 의료관계자들의 추정이다. * '''피격 11일째 오후 1시경 (1997년 2월 25일 화요일)''' 혈압과 맥박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한 이한영은 심정지가 두차례나 일어나 두차례의 인공호흡과, 혈압상승제 투여 등 응급처치를 받았다. [[파일:4564564644.jpg]] * '''오후 9시 3분경''' 밤 9시 3분 심장박동이 멎었다. 사건발생 열흘 후 중환자실에서 숨을 거두었으며, 총알 관통상에 의한 두개골 골절과 중증 뇌좌상으로써 사인은 심폐기능을 조절하는 뇌관 기능의 마비였다. 병원측에서는 이씨의 장기가 극도로 손상된 상태라 장기기증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3434234525235.jpg]]}}}||{{{#!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343426809-.jpg]]}}}|| || 은행 CCTV에 찍힌 간첩. || 사건현장에서 발견된 탄피.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333344333.jpg]]}}}|| || 당시 피격현장.[* 이씨가 왼쪽이마에 총격을 받고 흘린 피가 적나라하게 보이듯이 당시 범행이 얼마나 참혹하고 처참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